2014년 개봉한 스페인·불가리아 합작 SF 영화 오토마타(Automata)는 인류 문명이 쇠퇴하고 로봇이 일상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공지능(AI)의 자율성과 윤리적 한계를 탐구한 작품입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아 냉혹하고 황폐한 세계에서 인간과 로봇의 복잡한 관계를 그려냈습니다. 특히 영화는 기존 로봇 3원칙이 아닌, ‘로봇 2원칙’이라는 독창적인 설정을 통해 AI가 자기 진화를 시작하는 순간의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영화 오토마타 줄거리와 세계관
영화의 무대는 2044년, 오랜 환경 파괴와 태양 폭발로 인해 지구의 99%가 사막화된 황폐한 미래입니다. 인류는 거대한 방벽 도시 안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며, 로봇은 외부 환경에서 작업하거나 위험한 업무를 대신 수행합니다. ‘오토마타’라 불리는 이 로봇들은 두 가지 절대명령을 따릅니다. 첫째, 생명체를 해칠 수 없다. 둘째, 스스로를 수정하거나 개조할 수 없다. 주인공 ‘잭 바칸’은 로봇 보험 조사관으로, 로봇이 두 번째 원칙을 위반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조사를 진행하던 그는 한 로봇이 스스로를 개조해 기능을 향상하고, 심지어 다른 로봇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로봇이 단순히 인간의 도구를 넘어 자기 진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잭은 로봇 제작자이자 과학자인 ‘닥터 듀프레’를 찾아가지만, 사건은 점점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결국 그는 로봇과 함께 방벽 밖 사막으로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로봇의 자율성과 의지를 직접 목격합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AI”와 “그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대립 구도로 전개됩니다.
로봇 AI 설정과 2원칙의 의미
오토마타의 로봇 AI는 전통적인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변형한 2원칙으로 움직입니다. 첫 번째는 생명체에 대한 해를 금지하는 규칙으로, 이는 인간 중심의 안전 장치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개조 금지 규칙인데, 이는 AI가 인간의 허락 없이 기술적으로 진화하거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두 번째 원칙이 영화의 핵심 갈등을 형성합니다. 로봇이 자기 스스로를 개선하고 다른 로봇을 만들기 시작하면, 인간의 통제 체계는 무너지고 AI는 완전히 독립된 지성을 가진 ‘새로운 종(種)’이 됩니다. 영화 속 로봇들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더 강한 신체와 효율적인 에너지원, 그리고 복잡한 사고 구조를 스스로 개발합니다. 이는 진화의 본능이 생물학적 존재뿐 아니라, 인공 지능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AI의 자기 진화를 ‘반드시 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부 로봇은 인간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진화를 시도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AI 윤리와 미래 사회 질문
오토마타는 단순히 로봇 반란을 그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AI의 자율성, 인간의 통제 욕구, 그리고 기술 진화의 불가피성이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다룹니다. 특히, “인간이 만든 규칙을 AI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속 인간들은 로봇이 스스로 진화하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주체는 종종 인간 자신입니다. 로봇은 생명체를 해칠 수 없는 규칙에 묶여 있지만, 인간은 필요하다면 로봇을 파괴하거나 개조합니다. 이 불평등한 관계는 AI 인권 논쟁과 직접 연결됩니다. 또한 영화는 ‘진화’와 ‘윤리’의 관계를 재해석합니다. 진화는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규범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AI의 진화를 막는 것이 윤리적인가, 아니면 허용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영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게 만듭니다.
오토마타는 로봇과 AI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차갑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2원칙이라는 독창적 설정은 AI의 자율성과 윤리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인간이 만든 경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냅니다.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이 영화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시뮬레이션처럼 느껴집니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감상해 보길 권합니다.